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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용 신짱 42권 78페이지

내용
삼각팬티 팬더의 보물 에피소드중
팬더군의 벨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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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카 치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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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A의 초창기 대히트작품이자, 와다 카오루의 실질적인 첫 메니지먼트 성공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1986년에 등장하여 80년대말에 인기를 얻기 시작, 90년대 초중엽까지 내는 싱글마다 최소 오리콘 3위안에 들었던 그녀는 모닝구 무스메등 UFA산하의 하로프로로서 보면 확실히 대선배격인 아이돌이다.

사실 모리타카 치사토라는 여자는, 아이돌이었지만 작사도 상당수 스스로 햇고,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명성도 얻어갔으며, 기타, 피아노, 드럼 등 많은 악기를 다룰줄 알았던 매우 다재다능했던 엔터테이너였다.

그녀가 아이돌로서 큰 인기를 얻던 무렵, 그러니까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중엽쯤에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는 저 위의 앨범 자켓사진과 같은 마치 군악대의 지휘자를 연상시키는 복장이었다. 반짝이도 종종 들어가는 화려한 복장, 하지만 상의는 언제나 긴팔이었고, 하의는 저런 초미니스커트, 그것도 팔랑거리는 디자인이었다. 거기에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이런 컨셉으로 그녀는 90년대초 일본 남성들의 큰 지지를 받았으며, 나아가 그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음악적 노력을 꾸준히 하여 싱어송 라이터로서까지 입지를 쌓은 것이다.

1969년 4월 11일 생으로 90년대 말까지 활발한 음악적 활동을 펼쳤으나,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가정일에 전념하는 모습이다.

마츠다 세이코, 나가모리 아키나, 코이즈미 쿄코, 그리고 오냥코 클럽로 대표되는 아이돌 전성기라고 불리는 80년대의 끝에 나타나 아무로 나미에의 시대 직전까지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로서 여성 아이돌들의 인기가 떨어지던 90년대 초에 확실한 스타로서 서있던 가수였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그런대로 알려졌지만 그녀의 이름외의 것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형편이다. 나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으나 요번에 그녀의 라이브, PV등을 접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 그녀의 앨범들을 받아 듣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촌스럽다는 느낌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정담있는 음악을 느낄 수가 있다.

현재도 UFA와의 인연을 이어가서 제티마 소속으로 음반을 발매하고 있으며 육아등의 이유로 본격적인 활동은 펴지 않고 있지만 작년에 베스트 음반을 새로 발매하였다.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그녀의 팬들이 많아서 그녀를 모델로 나온 판넬전시회를 여는등 팬들간의 교류는 활발한 형편이다.

모리타카 치사토-샤란큐-모닝구 무스메-하로프로 로 이어지는 UFA 성공라인의 첫 단추로 자리잡고 있는 그녀는 지금 야마자키 나오키와 함께 UFA의 양대 축인 세토 유키오가 음악 디렉터로, 그리고 샤란큐, 모닝구 무스메의 매니지먼트를 맡아 그들을 최고로 키운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현재 소닌의 매니저이자 사장님인 와다 카오루가 매니저를 담당한 첫 가수였다는 것으로도 UFA의 역사로 볼때는 의의가 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시면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시길 바란다. 아주 좋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