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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용신짱 (학산문화사) 36권 16페이지

내용
바람이 의심가는 신짱 아빠의 출장에 따라온
신짱 일가의 모험기..^^
미에현 도바에서 미키모토 진주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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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http://www.hallailbo.co.kr 에서 옮기었습니다.

도바시 어촌청년이 일군 미키모토신화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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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로 연결된 미에현 진주의 섬. 사진 위쪽은 진주섬 신화의 주인공인 미키모토 고키치./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세계 최초 양식진주 생산...관광명소로 부각

미키모토 진주섬은 세계 최초로 양식진주를 생산해낸 곳이다. 일본 중앙에 위치한 이세시마(伊勢志摩) 도바만(島羽퐏)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중의 하나가 미키모토 진주섬이다. 미키모토 브랜드는 전세계 브랜드 파워에서 10위안에 랭크될 정도이다.
본보 일본 생물산업 취재팀은 미에(三重)현 도바만 미키모토 진주섬에 들러 진주 양식을 통해 순수과학과 산업을 결합시킨 ‘미키모토 신화’의 주인공 미키모토 고키치(御木本 幸吉 1858∼1954)의 개척자적이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취재할 수 있었다.
1951년 일반에 공개된 미키모토 진주섬에는 전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고, 진주 보석 및 진주 화장품 생산을 통해 전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로벌 기업, 미키모토의 신화는 계속 살아 숨쉬고 있었다.…○

도바만의 작은 섬 미키모토 진주섬. 신화의 주인공 미키모토 고키치의 동상이 서 있고, 1993년에는 진주 양식 1백주년을 기념하여 미키모토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육교로 연결되어 있는 이 섬은 수완이 뛰어난 한 청년의 불굴의 도전정신에 의해 세계 최초 양식 진주가 탄생한 곳으로 이제는 세계인에게 알려진 관광명소가 됐다. 진주박물관, 진주플라자, 해녀들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세계 최초 진주양식을 성공시킨 미키모코 고키치는 어떤 인물일까. 1858년 도바시내 우동집 단란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비즈니스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1875년 영국 함대 실버호가 미키모토가 사는 마을 항구에 들어왔을 때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서 피했지만 그는 배를 저어 나가 영국선원들에게 수완을 발휘하여 채소를 팔아 돈을 벌 정도였다. 20대에 도쿄(東京)로 가서 천연진주가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본 순간 매우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후 조개껍데기 사업과 진주 무역 사업을 벌이면서 굴과 조개 등을 배운뒤 이를 실용화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 30세 되던 해부터 진주조개 양식을 시작했다.
1890년 적조현상으로 조개와 굴이 거의 모두 죽게 됐으나 1893년 상도(相島·현재의 진주섬)에서 반쪽짜리 진주가 탄생한다. 1898년에는 단추 형태의 블리스터 진주를 기르는데 성공하여 그동안의 손해를 만회하고, 1899년에는 도쿄에 미키모토 진주점을 개설한다. 이후 1905년에 적조현상이 심각했으나 그 중 살아남은 조개속에서 완전히 둥근(眞円)진주를 발견하고 마침내 양식 진주의 비밀을 터득하게 된다.
이후 진주 양식 기술을 완성시킨 후부터 세계시장을 향한 비즈니스를 펼치기 시작했으며, 귀족원 의원에 선출되는 가하면 1927년에는 미국시찰 중 뉴욕에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을 만난다. 그 때 에디슨은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이 다이아몬드와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미키모토 당신이 진주를 만들어낸 것은 정말 전세계가 놀랄만한 일’이라고 찬양했다고 한다.
에디슨과 헨리포드처럼 미키모토 역시 스스로 공부를 하였으며 아이디어와 실험을 실천하여 실용화시킨 응용과학자였다. 순수과학과 산업의 결합을 성공시킨 인물이었던 것이다. 1954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양식진주의 왕으로 명성을 남겼다.
미키모토는 도요타와 함께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적 브랜드다. 도쿄 등 일본 대도시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8개국에 16개 직영매장이 있으며, 1백여개의 면세점과 백화점 매장을 운영 중이다.
미키모토 그룹은 현재 보석을 담당하는 파트와 제약부분(칼슘제부문과 화장품사업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진주는 0.3∼0.4미크론(1/1,000mm)의 얇은 탄산칼슘 결정이 수천 겹이나 쌓여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진주층 구조라고 하는데 특유의 은은한 아름다운 광택은 이 층에 들어간 빛이 간섭현상을 일으켜 생기는 것이다. 최고의 진주는 완벽한 원형을 지닌 티 없는 것인데 색깔은 핑크, 바이올렛, 옐로, 블랙(흑진주) 등으로 구분된다. 무게 광택 지름 외형에 따라 고가의 보석으로 변신한다.
양식진주가 탄생하려면 양식조개를 만드는데 3년, 진주 양식에 3년해서 6년쯤 걸린다고 한다. 양식 조개에서 진주가 나올 확률은 다시 50% 정도이고 이중 50% 만이 주얼리가 되고, 나머지 50%는 칼슘제와 단백질 화장품에 쓰인다. 그리고 최상의 주얼리가 되는 것은 5%정도에 그치고 20%는 보통의 진주 보석, 나머지는 값이 저렴한 액세서리로 사용된다고 한다.
도바시에 있는 미키모토 화장품공장에서는 물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그리고 물과 기름을 어떻게 섞느냐가 관건인데 계면활성제를 사용하지 않고 물과 기름을 초미립자로 쪼갠 후 기계를 이용해서 섞는다. 진주에는 콩키오린이라는 단백질을 추출하여 이를 중화시킨 다음 제품에 사용한다. 자외선 차단, 피부수분 유지, 약산성유지, 세포성장, 피부노화방지 등의 효과가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기술 모두가 미키모토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며 화장품 하나를 만드는데 특허가 4백개나 사용되었다고 한다. 펄 펠리아(Pelia), 헤르체(Herche)제품이 얼마나 과학적인 화장품인지. 가히 펄 사이언스(진주 과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진주섬내 1985년에 건립된 진주박물관에는 ‘사람과 진주, 그 관계를 생각한다’라는 테마로 역사 미술 공예 산업 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진주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4개의 전시실에 있는데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주채취의 변천사와 보석으로서의 진주의 탄생과정, 처리과정, 모패(母貝)에 손으로 진주 핵을 넣는 과정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진주플라자에서는 몇만원짜리 진주부터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진주까지 판매한다
해녀 퍼포먼스도 빼놓을 수 없다. 진주섬 앞쪽 바닷가에서 진주양식을 시작하던 초기의 모습 그대로 하얀 물옷차림의 해녀들이 모패를 바다에 넣거나 일일이 채취하는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준다. 일본 해녀에 관한 기록은 3세기 위지 왜인전에 남아 있다고 하는데 유사시대에는 일본 각지에 해녀가 생활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이세시마에는 해산물이 풍부하여 해녀들이 가장 많았으며 지금도 1천3백명이나 남아 있다고 했다.
일본의 진주 양식은 미키모토 진주섬 일대(미에현)를 비롯하여 에히메, 나가사키 구마모토가 대표적이며 가고시마 오키나와 시가 이바라키 등에서 약간씩 이뤄지고 있다.
미키모토 진주섬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각국 왕후 귀족, 정치가, 외교관, 실업가 등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또한 도바만의 아기자기한 이세시마국립공원의 풍광, 일본 3대 신궁의 하나인 이세신궁과 옛 풍물거리인 ‘오카게거리’, 이세의 명물 아카후쿠(赤福)찰떡 등이 방문객을 즐겁게 한다.

한승철기자 schan@hall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