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1997년 05월 14일 수요일 09:28 [이강윤 기자]

흉내낼까 겁나는 아동용비디오

단장을 마치고 동창회에 가는 엄마에게 “한눈 팔지 말아요”라고 점잖게 타이른다. 선생님 을 이르면서는 “우리 유선생이…”라거나, 공원에서 만난 처녀들에게 “그 음식솜씨 가지 고는 시집 못가겠어. 그래도 얼굴은 예쁘니까 괜찮겠네”라고 서슴없이 내뱉는다. 어느 버릇없는 청소년의 막되먹은 말투가 아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출시돼 높은 인기를 누 리고 있는 가족용 비디오 ‘짱구는 못말려’(스타맥스)에 나오는 다섯살짜리 주인공 짱구의 대사 일부다.
“더 씨티는 변해갔고 네이버스도 바뀌었어요” “개가 사는 하우스” “네이버스가 없는 바로 이 스몰하우스”. 디즈니만화를 통해 영어를 익히는 비디오 ‘디즈니 영어동산’(브에 나 비스타)에 나오는 요령부득의 말들이다. 만화영화나 조기교육 붐을 탄 영어교육 비디오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내 용이나 대사등에 아이들이 따라 할까 두려울 정도로 비교육적인 점이 적지않아 문제로 지적 되고 있다.
2년전 만화출간 당시 1백만부 이상 팔려나간 ‘짱구…’의 경우, 주인공인 다섯살짜리 짱구 의 버릇없는 말투와 마치 어른들이 하는 것 같은 성적 농담이 거침없이 튀어나와 문제가 됐 다. 익살스러운 대목이긴 하지만 심지어 짱구가 엄마를 “미스…”로 부르기도 한다. 최근 ‘짱구…’출시사측은 비디오를 내며 만화의 대사와 내용 일부를 순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 YMCA산하 ‘건전 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건비연)모니터팀은 비디오가 만화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짱구…’ 비디오는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일본과 동남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3세와 5세의 두 자녀를 기르고 있는 주부 김모(32·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는 “아이들이 비 디오에 나오는 말투를 경쟁적으로 따라해 고쳐주려해도 잘 되지 않는다”며 “무비판적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 대상의 만화영화는 대사나 내용에 교육적 차원의 심의가 필요하 다”고 주문했다.
건비연 모니터팀은 ‘짱구…’이외에도 디즈니 만화영화 ‘포카 혼타스’의 노골적인 인종 차별과 백인 우월주의, ‘김지호의 춤추는 동요나라’의 춤이 성인 대상 쇼프로와 흡사하다 는 점, ‘웨딩 천사 피치’는 ‘공주병’을 갖게 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영어교육물의 문제도 크다. 시중에 나와 있는 영어교육 비디오는 상당수가 언어습득및 교육 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없이 노래 몇곡과 단어 몇개로 영어를 흉내내게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디즈니 영어동산’의 경우 진행자가 재미교포 출신 박현영씨로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발음 은 정확한 편이다. 그러나 지난해 출시직후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를 끈 ‘김지호의 춤추 는 동요나라-영어편’(SBS프로덕션)은 주진행자인 탤런트 김지호나 아역 탤런트들의 발음 은 물론, 무리하게 노래에 가사를 붙이느라 스트레스(액선트)나 인토네이션(고저)등이 부정 확하다는 지적이다.
뉴욕에서 17년간 한국인에게 영어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바이 링귀스트’로 활동하다 최근 귀국한 이강선(43·EES 교육감독관)씨는 “‘더 씨티는 변해갔고’식의 말 은 영어습득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할뿐만 아니라 모국어 학습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며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언어체계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교육물 비디오는 심의과정에서 교육적인 측면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반복 시청 과 아이들의 강한 모방본능을 염두에 둔다면, 위험수위에 이른 만화영화의 폭력·선정성은 물론이고, 이름만 내다 거는 식의 형식적인 전문가 감수와 심의도 커다란 문제라는 지적이 높다.

문화일보 1997년 05월 26일 월요일 13:32

<문화일보를 읽고>아동비디오 저질지적 공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14일자(일부지방 15일자)에 실린 ‘흉내낼 까 겁나는 아동용 비디오’기사에 공감하는 바 매우 컸다. 아이들은 비디오에 무조건적으로 빠져드는데 내용이나 대사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기사에서 지적된 ‘짱구는 못말려’같은 비디오는 아이들의 시청을 자제시켜 달라는 가정통지문이 학교에서 오기도 했 다. 아이와 함께 비디오를 보며 지도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가사에 매달리다 보면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이웃집에서 모두 사주기에 나도 영어교육 비디오를 한 세트 사줬는데 내가 봐도 교육적 효 과가 얼마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값은 왜 그렇게 비싼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 만큼 형식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아이들 대상 비디오는 내용이나 대사의 폭력성뿐만 아니라 교육적 측면에서도 엄격한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