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矢みき(마야 미키)
낱말공부(41-) :
2007. 10. 23. 22:55
본문
크레용 신짱 41권 32페이지
내용
입국심사장에서
신짱이 나 마야 미키에게 검사받고 싶어 라고 하자
아빠가 그거 좋겠다 가볍게 지적도 받고 라고~~
아마도 춤추는 대수사선을 염두에 둔 대사가 아닌가 싶네요.
프리터 배우 마야 미키(眞矢みき)
마야 미키(眞矢みき, 42)가 다카라즈카(寶塚)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다카라즈카 톱 스타 시절에는 남자 역할이면서도 머리를 길게 기르고 사진집을 내는 등 일반적인 다카라즈카 스타와는 다른 이단아적인 풍모를 자아냈던 인물이다. 1998년에 극단을 은퇴한 후 8년. 그동안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2(踊る大搜査線2)>의 경시청 여성 엘리트 관리관으로, NHK연속TV소설 <바람의 하루카(風のハルカ)>의 어머니 역할로 착실히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다카라즈카 톱에서 가혹한 현실로"
작년, 자수훈장을 탄 오오토리 란(鳳蘭, 60)이 이런 불평을 한 적이 있다. "우연히 잡아 탄 택시 운전사가 은퇴한 지 몇 년 됐냐고 묻더라!" <베르사이유의 장미(ベルサイユのばら)>로 다카라즈카의 황금기를 구축하고 이후 연극에서 활약했지만 사람들은 TV에 나오지 않으면 은퇴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여배우로 전업한 다카라즈카 톱스타들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마야 역시 그런 벽에 부딪힌 적이 있다. 그럴 때 언론 매체들이 뽑는 연기상들이 큰 격려가 됐다고 한다.
"조연여배우상 부분에서 2위에 올랐어요. 이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위가 되진 못했지만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연예계라는 곳이 다카라즈카 톱 스타였다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니까요.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는다는 생각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전기가 될 일이 찾아왔다. 극단을 은퇴한 지 5년 째인 2003년. 오다 유지(織田裕二) 주연의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2(踊る大搜査線2)>가 그것. 아오시마(靑島) 등 현장의 형사들과 격렬하게 대립하는 경시청의 여성 엘리트 관리관 역을 오디션을 통해 따냈다. "악역이었지요. 다카라즈카에서는 늘 좋은 역만 했지만 악역을 맡는데 저항은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오디션까지 보며 따내지 않았겠죠. 프랑스의 잔 모로를 좋아하는데 그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정직한 역할이 싫다.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는 역할이 좋다'고. 나 역시 그런 역히 어렵지만 할 의욕이 생깁니다."
방송 중인 <바람의 하루카(風のハルカ)>에서는 여주인공 하루카(ハルカ, 무라카와 에리)의 어머니 유코(木綿子)를 연기하고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 하루카를 오이타(大分)에 사는 친정 어머니에게 맡긴 채 오사카(大阪)에 나가 일하는 커리어우먼. 작년 6월부터 녹화를 시작해 17일에 모두 끝마쳤다. NHK오사카방송국 근처에 원룸 맨션을 얻어 지난 9개월 동안 이 역할에 몰두했다. "원룸에 변변한 가구 하나 없는 삶이었습니다. 오직 대본만 마주했죠. 다카라즈카에 들어간 17살 때 이후 처음 해 본 생활이었어요. 처음이라 매일매일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만큼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다카라즈카의 혁명아!"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카라즈카음악학교에 들어갔다. 음악학교 예비교의 교복이 너무 좋아서였다. 동기로는 구로키 히토미(黑木瞳), 스즈카제 마요(凉風眞世) 등이 있다. 입단 15년 만에 톱이 됐는데 보통 12~15년째에 톱이 되는 걸 감안하면 늦깍이 취임이었다. "하급생 때에는 늘 열등생이었어요. 잡초 같았죠. 톱이 될 거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꿈은 없었어요. 그 때도 지금도 먼 장래의 꿈을 꾸기 보다는 눈 앞의 일을 헤쳐나갈 뿐입니다."
톱으로 활동할 때에는 남자 역할을 하면서 이례적으로 머리를 기르고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사진작가의 촬영으로 남장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또 극단을 그만두기 직전에는 일본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해서 다카라젠느(タカラジェンヌ)로서 늘 첫번째 시도를 감행한 '혁명아'로 불렸다.
"다카라즈카 극단의 5개 팀인 호시(星), 유키(雪), 하나(花), 츠키(月), 츄우(宙)에는 5명의 톱이 있어요. 1명 정도는 달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들어갈 때에도 특별히 다카라즈카를 좋아했다거나 팬이었던 게 아니어서 고집이나 선입견 같은 게 없었어요. 쟈니스(ジャニ-ズ)나 전직 아이돌 스타들과 마찬가지겠지만 '다카라즈카니까'라는 편견과 매뉴얼대로 행동해야 하는 게 싫었습니다. 40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니까 하나의 편견을 깨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카라젠느라고 하면 화려한 생활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마야는 2주일 동안 72엔으로 버틴 에피소드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다카라즈카라는 곳이 꿈이 최고이고 돈을 다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돈을 은행에서 찾으려고 하면 잔고가 없지는 않았어요. 월급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상급생들에게 사달라고 조르면 잘 사줬으니까 특별히 돈이 필요 없어요."
"어딘가에 갇히지 않는 프리터!"
어릴 때에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전학을 많이 했다. 히로시마(廣島), 후쿠오카(福岡), 오사카(大阪), 요코하마(橫浜), 치바(千葉) 등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8번이나 학교를 옮겨야 했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잘 관찰하게 됐어요. 분위기를 읽고 이 반에서는 누가 리더이고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 지를 곧바로 파악했지요.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지 않은 사람, 오해 받는 사람과 잘 지냈습니다. 여배우로서는 고독해선 안 되기 때문에 협조성,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방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지금도 취미라고 늘 얘기하곤 한다.
4월부터는 후지TV 연속극 <어텐션 플리즈(アテンションプリ-ズ)>에 객실승무원학교의 교관 역으로 출연한다. '다카라즈카를 그만둔 지 8년. 신인으로 데뷔 공연을 끝낸 느낌입니다. 여배우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병원 같은 데 가서 직업란을 채울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배우라고 쓰지만 프리터라는 마음으로 삽니다. 뭔가에 묶이거나 지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어딘가에 갇히는 내가 싫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가 도려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더 나를 몰이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크레용 신짱 41권 32페이지
내용
입국심사장에서
신짱이 나 마야 미키에게 검사받고 싶어 라고 하자
아빠가 그거 좋겠다 가볍게 지적도 받고 라고~~
아마도 춤추는 대수사선을 염두에 둔 대사가 아닌가 싶네요.
프리터 배우 마야 미키(眞矢みき)
마야 미키(眞矢みき, 42)가 다카라즈카(寶塚)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다카라즈카 톱 스타 시절에는 남자 역할이면서도 머리를 길게 기르고 사진집을 내는 등 일반적인 다카라즈카 스타와는 다른 이단아적인 풍모를 자아냈던 인물이다. 1998년에 극단을 은퇴한 후 8년. 그동안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2(踊る大搜査線2)>의 경시청 여성 엘리트 관리관으로, NHK연속TV소설 <바람의 하루카(風のハルカ)>의 어머니 역할로 착실히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다카라즈카 톱에서 가혹한 현실로"
작년, 자수훈장을 탄 오오토리 란(鳳蘭, 60)이 이런 불평을 한 적이 있다. "우연히 잡아 탄 택시 운전사가 은퇴한 지 몇 년 됐냐고 묻더라!" <베르사이유의 장미(ベルサイユのばら)>로 다카라즈카의 황금기를 구축하고 이후 연극에서 활약했지만 사람들은 TV에 나오지 않으면 은퇴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여배우로 전업한 다카라즈카 톱스타들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마야 역시 그런 벽에 부딪힌 적이 있다. 그럴 때 언론 매체들이 뽑는 연기상들이 큰 격려가 됐다고 한다.
"조연여배우상 부분에서 2위에 올랐어요. 이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위가 되진 못했지만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연예계라는 곳이 다카라즈카 톱 스타였다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니까요.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는다는 생각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전기가 될 일이 찾아왔다. 극단을 은퇴한 지 5년 째인 2003년. 오다 유지(織田裕二) 주연의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2(踊る大搜査線2)>가 그것. 아오시마(靑島) 등 현장의 형사들과 격렬하게 대립하는 경시청의 여성 엘리트 관리관 역을 오디션을 통해 따냈다. "악역이었지요. 다카라즈카에서는 늘 좋은 역만 했지만 악역을 맡는데 저항은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오디션까지 보며 따내지 않았겠죠. 프랑스의 잔 모로를 좋아하는데 그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정직한 역할이 싫다.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는 역할이 좋다'고. 나 역시 그런 역히 어렵지만 할 의욕이 생깁니다."
방송 중인 <바람의 하루카(風のハルカ)>에서는 여주인공 하루카(ハルカ, 무라카와 에리)의 어머니 유코(木綿子)를 연기하고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 하루카를 오이타(大分)에 사는 친정 어머니에게 맡긴 채 오사카(大阪)에 나가 일하는 커리어우먼. 작년 6월부터 녹화를 시작해 17일에 모두 끝마쳤다. NHK오사카방송국 근처에 원룸 맨션을 얻어 지난 9개월 동안 이 역할에 몰두했다. "원룸에 변변한 가구 하나 없는 삶이었습니다. 오직 대본만 마주했죠. 다카라즈카에 들어간 17살 때 이후 처음 해 본 생활이었어요. 처음이라 매일매일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만큼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다카라즈카의 혁명아!"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카라즈카음악학교에 들어갔다. 음악학교 예비교의 교복이 너무 좋아서였다. 동기로는 구로키 히토미(黑木瞳), 스즈카제 마요(凉風眞世) 등이 있다. 입단 15년 만에 톱이 됐는데 보통 12~15년째에 톱이 되는 걸 감안하면 늦깍이 취임이었다. "하급생 때에는 늘 열등생이었어요. 잡초 같았죠. 톱이 될 거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꿈은 없었어요. 그 때도 지금도 먼 장래의 꿈을 꾸기 보다는 눈 앞의 일을 헤쳐나갈 뿐입니다."
톱으로 활동할 때에는 남자 역할을 하면서 이례적으로 머리를 기르고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사진작가의 촬영으로 남장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또 극단을 그만두기 직전에는 일본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해서 다카라젠느(タカラジェンヌ)로서 늘 첫번째 시도를 감행한 '혁명아'로 불렸다.
"다카라즈카 극단의 5개 팀인 호시(星), 유키(雪), 하나(花), 츠키(月), 츄우(宙)에는 5명의 톱이 있어요. 1명 정도는 달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들어갈 때에도 특별히 다카라즈카를 좋아했다거나 팬이었던 게 아니어서 고집이나 선입견 같은 게 없었어요. 쟈니스(ジャニ-ズ)나 전직 아이돌 스타들과 마찬가지겠지만 '다카라즈카니까'라는 편견과 매뉴얼대로 행동해야 하는 게 싫었습니다. 40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니까 하나의 편견을 깨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카라젠느라고 하면 화려한 생활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마야는 2주일 동안 72엔으로 버틴 에피소드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다카라즈카라는 곳이 꿈이 최고이고 돈을 다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돈을 은행에서 찾으려고 하면 잔고가 없지는 않았어요. 월급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상급생들에게 사달라고 조르면 잘 사줬으니까 특별히 돈이 필요 없어요."
"어딘가에 갇히지 않는 프리터!"
어릴 때에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전학을 많이 했다. 히로시마(廣島), 후쿠오카(福岡), 오사카(大阪), 요코하마(橫浜), 치바(千葉) 등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8번이나 학교를 옮겨야 했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잘 관찰하게 됐어요. 분위기를 읽고 이 반에서는 누가 리더이고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 지를 곧바로 파악했지요.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지 않은 사람, 오해 받는 사람과 잘 지냈습니다. 여배우로서는 고독해선 안 되기 때문에 협조성,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방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지금도 취미라고 늘 얘기하곤 한다.
4월부터는 후지TV 연속극 <어텐션 플리즈(アテンションプリ-ズ)>에 객실승무원학교의 교관 역으로 출연한다. '다카라즈카를 그만둔 지 8년. 신인으로 데뷔 공연을 끝낸 느낌입니다. 여배우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병원 같은 데 가서 직업란을 채울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배우라고 쓰지만 프리터라는 마음으로 삽니다. 뭔가에 묶이거나 지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어딘가에 갇히는 내가 싫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가 도려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더 나를 몰이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