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life.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11230&ar_seq=

“해강아 솔강아 집에 가자.” 솔강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재차 “솔강아, 얼른 집에 가자”고 재촉을 해도 여전히 TV에 빠져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솔강아, 아빠 오셨다. 집에 가야지”를 두 번 더 말씀하시면 마지못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엄마가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집 TV에 5개월 전 케이블을 설치하고 나서부터 일어난 현상이다. 어린이TV와 교육방송에 코를 박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아니다. 채널 22번과 23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일본 만화 <짱구는 못 말려 1, 2>를 접하고 나서부터다.

결혼 후 TV에 빠져 침을 질질 흘리면서 보다가 남편이 불러도 들은 척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큰 소리로 불러도 듣지 못하는 아내를 아들 솔강이가 어느새 하루가 다르게 닮아가고 있으니 이를 어쩔거나.

짱구를 곧잘 따라하며 바지를 내리기도 하고 엉덩이를 흔드는 흉내를 내는 게 예사다. “어어어~” 걸걸한 목소리까지 낸다.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꼬마 악동 짱구는 제 엄마 말을 안 듣는 건 별일 아니다. 고만할 때 아이는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않은가.

걸핏하면 짱구 머리를 쥐어박아 진짜 짱구가 되게 하는 엄마가 마땅치 않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통속이 되어 예쁜 여자에게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도 영 아니다. 5살 아이라고 보기엔 되바라진 짱구가 한편으론 귀엽기도 하지만 그걸 매번 따라하는 솔강이가 배울까 염려되기도 했다.

집에 있을 때면 TV 채널권을 독차지하려고 떼를 쓴다. 잠시라도 방에 들어가면 TV를 켜는 것도 모자라 짱구만 틀어댄다. 많게는 하루 다섯 시간을 짱구에 빠져 사는 날도 있었다. 그냥 웃기는 장면에 부모인 우리도 <짱구는 못 말려>에 한동안 빠져 살기도 했다. 그러기를 다섯 달이 지났다.

어젠 아침밥을 먹는데 아이가 밥상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내는 아이에게 열 셀 때까지 나오란다. 해강이와 함께 밥을 먹다가 이번에는 반드시 버릇을 고쳐주겠노라고 벼르던 아내가 솔강이를 떼어놓고 출근을 서두르고 있다. 여전히 나올 생각이 없는 솔강이는 텔레비전 앞에 누워있다.

“해강아, 솔강이는 집에 두고 우리끼리 가자.”

평소 동생을 챙기는 해강이가 소리 없이 글썽이고 있다. 간신히 달래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야, 솔강아 얼른 와서 밥 먹으라니까.”

“냅둬요. 저놈자식 밥도 먹지 말라고 해요.”

“엄마 문 닫어. 어린이집에 안 갈 거야.”

처음 있는 일이다. 웬만하면 몇 숟가락이라도 뜨고 따라나섰던 아이가 짱구를 보기 위해 TV와 함께 있겠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초반엔 개입을 하지 않던 나는 그냥 아이만 두고 가는 아내도 미웠고 생떼를 쓰는 솔강이도 미웠다. 꾹 참고 있다가 솔강이를 어르기로 했다. 하지만 막무가내 한번 토라진 아이가 맘이 바뀌질 않는다. 무엇보다 출근하느라 보내는 두어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솔강아 얼른 밥 먹고 엄마랑 누나랑 같이 가자 응?”

“아빠, 엄마 때문에 화났어.”

늘 하던 대로 모든 화살을 제 엄마에게 돌린다.

“너 자꾸 이러면 아빠가 맴매한다. 갈 거야 안 갈 거야?”

“……”

하는 수 없이 엉덩이를 예닐곱 대 때렸다.

몇 번이나 아내와 TV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폭 빠져 사는 건 둘째다. 어릴 적부터 TV에 매달려 사는 아내가 떡 버티고 있으니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 확실한 계기가 마련되길 기다리고 있던 차다.

“솔강이 너 자꾸 이러면 아빠가 텔레비전 버릴 거야.”

“그럼, 짱구도 못 보는데….”

“이놈자식아 엄마 아빠도 이젠 안 볼 거야. 짱구고 뭐고 없어.”

즐겨보던 TV를 꺼내 밖에 내놓았다. 나도 많은 갈등을 겪었다. ‘올해 월드컵도 있고 가끔 괜찮은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정말 버려야 하나?’ 그 사이 아내는 솔강이를 달래 밥을 먹이고 있었다. 해강이와 먼저 밖에 나가다가 다시 TV를 불끈 들어 골목 앞에 내려놓고 차에 올라탔다.

마침 “부릉부릉~” 동네 쓰레기를 죄다 주워가는 아저씨가 짐칸이 있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차에 있는 동안 다시 들여다 놓을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이렇게까지 된 이상 아이들 교육과 집안 분위기 개선을 위해 꾹 참고 아저씨가 TV를 발견할까 말까 지켜보고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돈 되는 건 귀신같이 찾아내는 아저씨가 내 차 바로 앞 TV 옆으로 왔다. 이때 또 한 번 갈등을 겪었다. 얼른 내려서 집으로 들여갈까 망설이다가 얼굴을 내밀고 “아저씨, 그거 잘 나오거든요. 오늘부터 우린 텔레비전 안 볼 거니까 가져가세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봐야겠네요.” 아침에 한 분에게 절을 다섯 번이나 받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 넷이서 끼고 살았던 TV는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헤어졌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즐거워하는 해강이가 언니들 졸업식 때 부른다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또 한번씩 더 하고 나니 솔강이가 밖으로 나왔다.

어린이집까지 가는 동안 아내와 솔강이는 서로에게 약속을 하고 있었다.

“엄마, 인제 우리 텔레비전 못 봐?”

“그럼, 오늘부터 엄마도 안 볼 거야. 솔강아 이제 그만 보자 알았지?”

“어린이집에서도?”

“그래, 텔레비전 많이 보면 생각주머니가 바보가 된다니까. 그럼 어떻게 되겠어?”

“알았어요.”

차에서 내리고 나서 한참을 기다려도 아내가 오지 않았다. 평소 길어야 1분인데 자리를 옮겨 10분이 흘렀다. 하필 출근시간에 무슨 이야기가 그리 길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 솔강이 작년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부탁 좀 드리고 오는 중이에요.”

“꼭 아침에 해야 하는가?”

“다른 애들 두세 배는 먹어대고 텔레비전도 그러니 말씀을 안 드릴 수가 있어야지요.”

“이러다 오늘 늦지 않을까 모르겠네. 아침에 서두르면 안 날 사고도 나게 돼 있거든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단연 오늘 화제는 TV다. 서로에게 안 볼 자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월드컵이야 밖에 나가서 보면 된다고 했다. 독일에서 축구 경기하는 시간과 시차를 계산하느라 둘이서 옥신각신하다가 출근 점검한다는 전화에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관심을 딴 데로 돌릴 묘안을 찾아야 하는데도 동의하였다.

시골에 가면 아예 밖에다 설치하여 손님들과 모닥불을 피우며 보겠노라는 다짐까지 했다. 나는 그래도 참아낼 자신이 있는데 아내가 참 걱정이다. 몇 달을 버틸까.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사지 않기로 했지만 그게 가능할까.

기분이 별로 일 것 같은 하루가 왠지 가뿐하여 오랜만에 밥을 안쳤다. 돌아온 아내는 텔레비전을 치우고 나서 석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구입했다는 사람 이야기를 건넨다. 솔강이는 제가 먼저 선생님께 틀어달라고는 하지 않았다고도 하며 누가 짱구를 보기에 가만히 앉아서 보았다는 보고도 했다.

국이 끓고 있는 동안 해강이는 늘 하던 대로 글자를 쓰고 있다. 솔강이는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 사이 나는 달걀을 삶아서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

TV는 계륵(鷄肋)이었다. 앓던 이와도 같았다. 하루아침에 한 가정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걸 과감히 버리고 코드를 뽑아서 버리니 대화도 늘었다.

아이들 깨우는 방식도 TV 소리를 크게 틀어놓으면 텔레비전 화면을 보다가 일어나는 패턴에서 오늘 아침엔 엄마, 아빠가 손수 기지개를 켜주며 쭉쭉 늘려주고 보듬어 주자 별 저항 없이 일어난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 아직은 모른다. 차선으로 먼저 케이블을 해약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내다버렸으니 없는 살림에 괜한 일을 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당분간이라도 아이와 아내 관심사를 우리 주변으로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도 뜻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나는 어제 또 한 번 대단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지만 애물단지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이것만은 자신이 있다. 아이들에겐 더 많은 정성을 쏟는 수밖에 없질 않은가. 늘 있었던 자리에 뭐가 하나 없으니 아직은 휑하지만 곧 적응하리라 본다.

/김규환 기자